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기고
실향민들의 고향을 향한 통곡은 언제 멈추려나<호국보훈의 달 기고> 이영진 한양대 특임교수(보건학박사)
  • the복지타임즈=장상옥 기자
  • 승인 2021.06.09 03:54
  • 댓글 0
이영진 한양대 특임 교수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나라 잃은 슬픔에 헤롯왕이 지은 성전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서쪽 벽에 모여서 통곡을 하며 울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서 냉전의 상징물이었던 동서독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어 통일 독일이 된지도 32주년이나 지났지만 남북한 냉전은 여전하다. 1천만명의 실향민들은 고향을 빼앗긴 설움에 DMZ 철조망에 모여서 70년째 통곡하며 울고있다.

유월이면 실향민이신 어머님은 어김없이 6.25전쟁을 떠올리면서 판문점에 가야 한다고 재촉한다. 92세로 걷기조차 힘이 들어도 나의 살던 고향에 가고 싶다며 집에서 보자기에 주섬주섬 사과와 꽃감 등 상차림을 하신다. 차로 한참을 가다가는 막걸리가 빠졌다며 세우고는 편의점에서 막걸리 한통을 직접 사서 품안에 안고 자리에 다시 앉는다.

판문점이 어머님의 고향이다. 임진각 망배단 근처의 철조망 앞에서 손가락으로 “저기 저쪽이야! 눈에 보이는데 갈수가 없네!” 하시면서 한참을 바라보다 돗자리를 펴고는 상차림을 손수 하신다. 막걸리를 잔에 따르고 지팡이를 내려놓고는 아주 힘들게 고향을 향해 절을 하신다. 눈물을 머금은 듯하더니 이내 통곡하신다. 옆에 있던 자식과 손녀도 눈시울을 연신 훔쳐댄다. 어머님의 한 맺힌 내고향, 내가족을 향한 통곡은 아직도 그칠줄 모른다. 아마도 강 건너 저쪽에서 들으실 거라고 생각하시나 보다.

.휴전협정을 조인한 판문점은 경기도 장단군과 개풍군의 경계지역에 있는 ‘널문리’ 라는 마을 이름이다. 역사를 보면 널판지로 만든 대문인 ‘널문’이 많아서 널문리 라고 했다. 널판지다리를 판문교 라고 해서 판문점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6.25 전쟁으로 1.4 후퇴 당시 어머니는 홀로 임진강을 건너 오셨지만 부모형제들은 미처 강 하나를 건너오지 못했다면서 “나는 生고아야” 하시며 눈물 훔치던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1983년 KBS 특별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에서 5남매는 큰 도화지에다 어머님의 가족 이름을 모두 써가지고 몇달동안이나 번갈아가면서 들고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님의 가족 이름이 빼곡하게 적은 종이 한 뭉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틈새에다 붙이고 다니셨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9살 이승복 어린이의 피맺힌 절규이자 외침이지만 이것은 92세 어머님의 외침이기도 하다. 어머님을 모시고 강원도 강릉에 놀러갔다가 오는 길에 평창에 들러 이승복기념관을 둘러본 적이 있다. 어머님은 기념관에 전시된 사진 등을 보면서 “맞어 저놈들 은 아주 잔인해” 하시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기념관앞 이승복 동상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면서 한참을 명복을 빌었다.

1천만 이산가족은 아직도 많은 분들이 생존해 계신다. 모두 고령으로 거동하기도 힘이 드시지만 “ 언젠가는 내 고향에 갈수 있겠지 그러니 악착같이 움직여야해! ” 하면서 서로를 다독거리시지만 끝내 고향땅을 밟아보지도 못한채 한 맺힌 상태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살아서는 그 강 하나를 건너지 못해 생이별 했는데 그토록 살아생전 가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되고 있다. 2세대들은 살아실제 효도해서 부모님 고향 방문을 꼭 이루어 드리고 싶었는데 이제는 영정사진을 들고 부모님 대신 고향땅을 방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이 태산이다.

더구나 실향민 어르신들의 유일한 즐거움이 고향사람들끼리 만나서 식사하면서 덕담을 나누는 것이다. 어릴 적 옛 이야기를 할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동무다. 자식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기에 고향사람들에 대한 애착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코로나 사태로 만날 수 없게 되자 매우 안타까워 하신다. 얼마나 더 살지도 모르는데 한번이라도 고향사람들 얼굴을 봐야 한다며 지팡이에 힘든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고 이북5도청을 다니셨다.

요즈음 안타까운 일은 “000님 돌아가셨습니다” 라는 부고 내용을 전해 들으면 또 한번 서럽게 눈믈을 흘리신다. “ 에구! 한번이라도 얼굴을 더 봤어야 하는데 ...” 하신다. 고향을 갈수도 없는데 고향사람들 이라도 만나서 오빠, 동생 하면서 어릴적 추억을 나눌 수가 있어서 정말 좋았는데 하시며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고개를 떨구는 뒷모습을 물끄러니 바라만 볼수 밖에 없다. 강 건너 내 고향에 자전거를 타고 가야한다며 지금도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 실향민의 애틋한 사연에 숙연해진다. 실향민들의 고향을 향한 통곡은 언제 멈추려나?

the복지타임즈=장상옥 기자  jangbak007@gmail.com

<저작권자 © THE 복지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HOT 포토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복지Eye-포토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