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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불자마다 소원성취와 부처님 오심을 봉축하는 기원을 빌었다견성암에서 바라본 불자들의 한결 같은 기원- "소원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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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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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연초면 앵록산 자락에 자리잡은 견성암에서 불자들이 자신의 소원성취와 부처님이 이땅에 오심을 봉축하며 부처님상을 깨끗한 물로 씻고 있다

(석가탄신일에 따른 자료)
 初八日
{4월 8일 : 浴佛日(욕불일)}은 불교신도들이 석가탄신일(釋伽誕辰日)로 경축하면서 사찰(寺刹)에 가서 재(齋)를 올리고 연등(燃燈)을 하며 제등행렬(提燈行列)을 함으로써 종교적인 차원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민간의 행사로 성대한 풍속이었습니다.
 전통적 풍속으로서의 초파일 세시(歲時)를 살펴보겠습니다. [ 燃(연)불타다. 提(제)들다, 끌다 ]

   燃燈(연등)의 유래 
 
- 초파일의 연등(燃燈) 행사는 신라 때부터 농사기도와 국가발전을 기원하던 예술제 성격의 연등회(燃燈會) 행사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궁중의 팔관회(八關會)와 함께 민간의 행사로까지 확대된 연등회(燃燈會)가 거행되어 국가적 차원의 성대한 불교의식(佛敎儀式) 행사로 자리잡게 됩니다. 연등 행사 시기는 신라 때에 정월 보름에 행해 지다가 고려 때 계승되어 정월 혹은 2월 보름에 연등회(燃燈會) 행사로 행해지거나 두 차례 모두 실시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초기에 왕실에서 연등회를 베풀기도 했지만 이후 국가적인 행사는 사라지고 민간에서 세시풍속으로 전승됩니다.
 현재의 사월 초파일에 연등하는 풍속은 고려시대 고종대(高宗代)에 최충헌(崔忠獻)의 아들이기도 한 최이(崔怡)가 초파일이 석가의 탄신일이기에 연등 행사도 이 날로 변경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이 있습니다.

   燃燈(연등) 풍속 
 - 고려 풍속에 초파일 수십 일 전부터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간(燈竿: 등불을 달 장대 기둥)에 매달아 깃발을 만들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돈이나 쌀을 얻어 쓴 것을 호기(呼旗)라 하는데, 이 호기의 풍속이 계승되어 초파일 며칠 전부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꿩 깃을 끼워 장식하고 천으로 깃발을 만들어 매답니다.
 등간(燈竿)에 등을 다는데, 보통 그 집안의 자녀 수대로 등간을 세우고 등(燈)을 달았다가 9일에 그칩니다.

   등의제작과 종류 
 
- 등(燈)의 종류는 수박, 마늘, 연꽃 등의 채과(菜果) 모양 등(燈)과 종, 북, 누각, 화분, 가마, 병, 항아리 등의 기물(器物) 모양의 등(燈), 용, 봉황, 학, 잉어, 거북, 자라 등의 동물(動物) 모양의 등(燈) 외에도 칠성등, 오행등, 일월등 등의 천문(天文) 모양의 등(燈)과 수복등(壽福燈), 태평등, 만세등(萬歲燈), 남산등(南山燈) 등의 상징적 문자(文字) 의미의 등(燈) 등 아주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등(燈)의 제작은 종이를 바르기도 하고 혹은 붉고 푸른 천을 바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데, 고사(故事)의 인물상이나 동물 그림 등을 그려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오색찬란(五色燦爛)한 다양한 모양의 등을 만듭니다.

   연등 놀이 
 연등 놀이를 하는 초파일 저녁을 등석(燈夕)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전례에 따라 야간의 통행을 허락하며 서울 장안의 사람들은 산기슭에 올라가 달아놓은 등(燈) 구경을 합니다. 혹 악기를 들고 쏘다니거나 등을 들고 돌아다니는 제등행렬(提燈行列)을 하면서 밤새도록 떠들썩하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연등 놀이가 왕성한 시기에는 낙화희(落火戱)라 해서 일종의 불꽃놀이처럼 등간(燈竿)에 매달린 등 줄 사이에 숯과 사기 파편을 넣은 주머니를 매달고 불을 붙여 터뜨리며 불꽃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초파일 여습(餘習) 
 
 소밥{소반(素飯)} : 초파일에 느릅떡{유엽병(楡葉餠)},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차려 놓고 손님을 천해서 음식을 대접하는데 이를 석가의 탄신일에 고기 반찬 없는 소밥이라 합니다.
  물장구 놀이{수고희(水鼓戱)} : 아이들이 등간(燈竿) 아래에서 물동이에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띄워 놓고 빗자루로 박아지를 두드리면 단조로운 소리가 나는데, 이를 물장구 놀이라 합니다. [ 素(소)바탕, 희다. 飯(반) 밥. 鼓(고)북, 치다. 戱(희) 놀이 ]
 
  석가탄신일 (釋迦誕辰日)
석가가 탄생한 날. 초파일(初八日)이라고도 한다. BC 563년 4월 8일(음력) 해뜰 무렵 북인도 카필라 왕국(지금의 네팔 지방)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와 마야(Maya)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經)과 논(論)에 석가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子月: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寅月: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2월 8일이므로 음력 2월 8일이 맞다고 하겠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다. 한편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음력 4월 초파일을 석가탄신일로 보고 기념한다.
참고 자료

[석가 (釋迦/BC 563 ?~BC 483 ?)]
불교의 개조. 석가모니(釋迦牟尼)·석가문(釋迦文) 등으로도 음사하며, 능인적묵(能仁寂默)으로 번역된다. 보통 석존(釋尊)·부처님이라고도 존칭한다. 석가(Sakya)는 민족의 명칭이고 모니(muni)는 성자라는 의미로, 석가모니라 함은 석가족(族)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o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悉達多)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佛陀)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사찰이나 신도들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Tathagata),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Bhagavat)·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

【출생】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山) 기슭의 카필라성(Kapilavastu: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족[釋迦族]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淨飯王)와 마야(Maya:摩耶)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샤키야족은, 그 왕호가 정반왕, 그리고 정반왕의 동생이 백반(白飯)·감로반(甘露飯) 등으로 불리고 있는 점에서 미작(米作) 농경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가모니는 크샤트리야 계급출신이라고 하지만, 샤키야족 내부에 카스트의 구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그가 순수한 아리아인(人)이라는 것도 확실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네팔계(系) 민족에 속하는 종족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아리아 문화의 영향하에 있었던 것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마야 부인은 출산이 가까워짐에 따라 당시의 습속대로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Lumbini) 동산에서 석가를 낳았다. 이는 아소카왕[阿育王]이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 곳에 세운 석주(石柱)가, 1896년에 발견·해독됨으로써 확인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산에서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찾아와 왕자의 상호(相好)를 보고, “집에 있어 왕위를 계승하면 전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며,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불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의 생몰연대에 관하여는 이설(異說)이 많으나, 그 중 유력한 것은 스리랑카의 《도사(島史) Dipavamsa》 《대사(大史) Mahavamsa》에 근거하여 불교학자 W.가이거가 주장한 BC 563∼BC 483년 설이다. 이 설은 중국의 《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에 전하는 중성점기(衆聖點記), 즉 불멸(不滅) 후 최초의 율장(律藏)이 결집되었을 때 제1점을 치기 시작하여 매년 1점씩 쳐서, 제(齊)나라의 영명(永明) 7년(AD 490)까지 975점에 이르렀으므로 불멸이 BC 485년이라는 설(BC 565∼BC 485년)과도 대략 일치된다. 그 외에 BC 624∼BC 544년설, BC 463∼BC 383년설 등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전자를 채용하고 있다.

【출가와 성도】 석가모니는 생후 7일에 어머니 마야 부인과 사별하였다. 그것은 석가모니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그 후 이모에 의하여 양육되었는데, 왕족의 교양에 필요한 학문·기예를 배우며 성장하였다. 그 생활은 물질적으로는 매우 풍부하였을 것이다. 당시의 풍습에 따라 그는 16세에 결혼하였다. 부인은 야쇼다라[耶輸陀羅]라고 하며, 곧 아들 라훌라[羅羅]도 얻었다. 이같이 안락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내던 중 석가모니는 인생의 밑바닥에 잠겨 있는 괴로움의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전설적으로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 모습, 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문(沙門)을 목격한 이른바 사문출유(四門出遊), 또는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써 설명된다. 석가모니는 29세 때 고(苦)의 본질 추구와 해탈(解脫)을 구하고자, 처자와 왕자의 지위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남쪽으로 내려가 갠지스강(江)을 건너 마가다국(國)의 왕사성(王舍城:Rajagrha)으로 갔다. 여기에서 알라라칼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라는 2명의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선정(禪定)을 배웠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통일에 의하여 하늘에 태어나 보려는 것이었는데, 석가모니는 그들의 방법으로써는 생사의 괴로움을 해탈할 수 없다고 깨닫자, 그들로부터 떠나 부다가야 부근의 산림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그는 당시의 출가자의 풍습이었던 고행(苦行)에 전념하였으나, 신체가 해골처럼 되었어도 해탈을 이룰 수는 없었다. 고행은 육체적인 면의 극소화를 통하여 정신의 독립을 구하는 2원적 극단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6년간의 고행 끝에 고행을 중단하고, 다시 보리수(菩提樹:Bodhi-tree) 아래에 자리잡고 깊은 사색에 정진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이 깨달음을 정각(正覺:abhisambodhi)이라고 한다. 그 깨달음의 내용에 대하여 《아함경(阿含經)》에는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사제(四諦:苦·集·滅·道의 네 진리, 즉 현상계의 괴로움과 그 원인 및 열반과 그에 이르는 길)·십이인연(十二因緣)·사선삼명(四禪三明) 등을 깨달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선정에 의하여 법(法:dharma)을 깨달았다고 하겠다. 즉 선정은 강렬한 마음의 집중이며, 여기에서 생긴 지혜는 신비적 직관(直觀)이 아니라 자유로운 여실지견(如實知見:있는 그대로 옳게 봄)이다. 이 지혜가 진리를 깨달아 진리와 일체가 되어 확고부동하게 되었는데, 공포에도 고통에도, 나아가서는 애욕에도 산란을 일으키지 않는 부동(不動)의 깨달음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번뇌의 속박에서 해방된 상태이기 때문에 해탈(解脫:moksa)이라고 하며, 이 해탈한 마음에 의하여 깨우쳐진 진리를 열반(涅槃:nirvana)이라고 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해탈은 참 자유, 열반은 참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설법】 석가모니는 성도 후 5주간을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의 기쁨에 잠겨 있었는데, 범천(梵天)의 간절한 권청(勸請)이 있어 설법을 결심하였다. 악마의 유혹, 설법주저(중생이 이해 못할 것을 염려), 범천권청 등은 마음속의 일을 희곡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보이나, 깊은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석가모니는 베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Mrgadava)에서, 일찍이 고행을 같이 하였던 5명의 수행자에게 고락의 양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와 사제에 관하여 설하였다. 이것을 특히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 법을 깨달아 제자가 되었다. 여기에 최초의 불교 교단(samgha:僧伽)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그의 설법을 통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석가모니는 적극적으로 설법을 계속하여, 그 교화의 여행은 갠지스강(江) 중류의 넓은 지역에까지 미쳤다. 제자의 수도 점차 증가하였으며, 각지에 교단이 조직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아함경》 《율장》 등의 원시불교 경전을 통해 전하여지고 있다. 구전(口傳)되어 오던 것을 후세에 편집한 것이지만, 후세에 정형화된 다음의 교설을 통하여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원형 또는 그 핵심을 알 수 있다. 삼법인(三法印:一切皆苦·諸行無常·諸法無我 또는 一切皆苦를 빼고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사제·팔정도(八正道: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무기(無記:일체의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답하지 않음. 실천을 지향함을 말한다)·법(法:모든 존재를 일관하는 보편적 진리)·오온(五蘊:色·受·想·行·識의 다섯 가지 존재의 구성요소)·육근(六根:법의 분류로서 眼·耳·鼻·舌·身·意의 주체. 이에 대응하는 色·聲·香·味·觸·法의 객체, 즉 6境을 더한 十二處와, 거기에 眼識 등의 6식을 추가하여 十八界를 말하기도 한다)·연기(緣起:존재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하여 성립함을 말함. 12연기가 특히 유명하다)·열반·일체중생의 평등 등이 그것이다.

입멸(入滅)】 혹서의 중부인도(印度) 각지를 45년의 긴 세월에 걸쳐 설법·교화를 계속한 석가모니는, 80세의 고령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의 중병에도 불구하고 교화(敎化)여행을 계속하였다. 이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여러 가지 유언을 하였다고 한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하여 수행하라” 또한 자기가 죽은 뒤에 “교주(敎主)의 말은 끝났다. 우리의 교주는 없다고 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내가 설한 교법(敎法)과 계율이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마침내 쿠시나가라(Kusinagara)의 숲에 이르렀을 때, 석가모니는 심한 식중독을 일으켜 쇠진하였다. “나는 피로하구나. 이 두 사라수(沙羅樹)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향하게 자리를 깔도록 하라”고 말하자, 제자들은 석가모니의 운명이 가까웠음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석가모니는 “슬퍼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모든 것은 곧 헤어지지 않으면 아니되느니라. 제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제행(諸行)은 필히 멸하여 없어지는 무상법(無常法)이니라. 그대들은 중단없이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니라”고 설한 후 눈을 감았다. 석가모니의 사후 그의 유해는 다비(茶毘:화장)되고, 그 유골[舍利:sarira]은 중부 인도의 8부족에게 분배되어 사리탑에 분장(分藏)되었다. 이 사리탑은 중요한 예배대상으로 되어 후에 불탑신앙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대승(大乘)불교에서는 불타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 가해져 불타에는 법신(法身:진리로서의 불타)·보신(報身:보살의 願·行에 의하여 성취된 불타)·응신(應身:중생구제를 위하여 상대방에 상응하게 나타나는 불타)의 3신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석가모니불은 2,500여 년 전의 인도라고 하는 특정의 지역·시대에 나타난 응신의 불타로서, 시방삼세제불(十方三世諸佛)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신앙의 입장에서 석가모니불은 위의 3신을 모두 갖추고 있는 분으로 숭배되고 있다. 그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 성도지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 입멸지 쿠시나가라는 4대 영지(靈地)로서 중요한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석가모니의 탄생·성도·입멸의 월·일에 관하여 최고(最古)의 문헌에는 기록이 없으나, 중국·한국 등지에서는 탄생을 4월 8일, 성도를 12월 8일, 입멸을 2월 15일로 한다. 또한 남방불교에서는 탄생·성도·입멸이 모두 바이샤카월(Vaisakha 月:4∼5월)의 보름날의 일이라고 하여, 이 날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한다. 중국·한국 등지에서는 석가모니의 전기를 8시기로 구분하여 팔상(八相:兜率來儀相·毘藍降生相·四門遊觀相·踰城出家相·雪山修道相·樹下降魔相·鹿苑轉法相·雙林涅槃相)이라고 부르는데, 회화나 조각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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