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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전철에서 받은 선물...용기는 폭염을 잊게 하다
  • THE 복지타임즈 =고근혜 시민기자
  • 승인 2018.08.0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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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절정이던 지난 8월 4일 토요일 점심 무렵, 오랜만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서울역행 전철을 탔다. 전철이 시원해서 인지 아니면 다른 약속들이 많은지 전철 안은 승객들로 붐볐다. 나는 책을 읽고 있는 노부부 앞에 서 있었다. 인천중앙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계신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요즘 전철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할아버지가 읽던 책을 할머니의 가방에 넣으시더니, 두 분은 신길역에서 나란히 내리셨다.

나는 기쁜 마음에 그분들의 빈자리에 앉았고, 대구에 계신 엄마와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철은 이미 한산해졌는데, 경로석 주변에 할머니 한분이 서 계셨다. 주황색 챙 넓은 모자를 쓴 할머니는 지팡이 같은 것을 두 개 들고 그것에 의지하여 서 있었다. 예전 같으면 스마트폰을 슬그머니 보면서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은 용기가 생겼다. 내 앞에 서 있던 승객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저 할머니 모셔올게요.”라고 말하고 할머니를 모시러 갔다. 할머니는 괜찮다 하면서도 나의 호의를 마다않고 자리에 와서 앉으셨다. 뿌듯함 때문인지 내 몸은 더 가벼워졌다.

대방역쯤 왔을까 할머니는 덥지 않냐며 내게 말을 걸었다.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뭔가를 보여주셨다. 더울 때 목에 두르는 토시란다. 물에 담갔다가 냉장고에 10분 정도 두면 시원하단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목에도 파란색 토시가 곱게 매어져있다. 할머니는 지난번 두 개를 샀다며 한 개를 주겠다고 하신다. 분명 더운 날 외출 길에 시원하게 한 개 더 만들어 여분으로 챙겨 오셨을텐데... 괜찮다며 계속 사양을 하니까 직접 해주시겠단다. 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나는 선 자세로 목을 길게 빼어드렸다.

“와, 시원하네요!”

“그렇다니까”

할머니가 선물해주신 토시 덕분인지 등줄기가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가방에서 더위 대비용 무기들을 한 개씩 꺼내 자랑하셨다. 지난번 동대문시장에서 사셨던 그 무기를 교환하러 가시는 길이시란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선물에 감사해서 나도 뭔가를 드리려 내 가방을 뒤졌다. 가방에서 부채를 꺼내 드리자 할머니는 지팡이 때문에 부채는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하신다. 주변 승객들은 할머니와 나의 대화를 무심한 듯 엿듣고 있었다. 짧은 정겨운 대화를 뒤로 하고 할머니와 나는 서울역에서 헤어졌다.

전철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전철을 타면 사회가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만 해도 경로석에 앉아도 별로 죄책감이 없었는데, 이제는 일반석에 앉아 있어도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자꾸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우리나라가 2017년 8월말 기준 노인인구 비율이 14%가 넘어서서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우리들은 전철에서 어르신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할머니는 일반석 앞에 서 계시면 아마 젊은이들이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미안한 마음을 아시기에 불편한 다리에도 경로석 앞에 서 계셨을 것이다.

그날밤 집에 돌아와서 목토시를 몇 개 주문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선물을 하려고...

THE 복지타임즈 =고근혜 시민기자  webmaster@bokjib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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