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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은빛 화식 할매 힘내세요!
  • THE 복지타임즈 =고근혜 시민기자
  • 승인 2018.08.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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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년만의 폭염에 방에 콕 박혀있는 일요일 정오, 미국 아들이 할매와 페이스톡을 했단다. 나도 안부를 전하고자 페이스톡을 했다. 화면에 비친 엄마는 평소 내가 알고 있는 우아하고 교양 있는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분노로 온몸을 떨며 어깨 수술해줬던 의사와 아버지, 동생에 대한 불만을 속사포로 쏟아 내고 있었다. 본인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만, 감정 조절을 못 하시는 듯 보였다. 엄마가 낯설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친정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그 전날 밤 수술한 부위가 너무 아파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다고 한다.

엄마는 내 아들과 딸, 오빠 아들들을 키워주셨다. 살림도, 육아도, 사람 사귐도, 미모도 뭐하나 부족함이 없는 자랑스러운 엄마다. 4명의 손주들이 5살 때부터 시작한 수영은 엄마가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호사였다. 엄마는 손주들에게 직접 모시옷을 재단하여 만들어 입히고 본인도 하얀 모시 저고리를 입고 수영장으로 나들이를 가셨다. 개구쟁이 손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모시옷을 벗어 제켰고, 할매는 그 옷을 깨끗하게 빨아 풀칠한 후 다림질까지 하여 손주들에게 입히셨다.

엄마는 ‘은빛 할매’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를 하신지 10여년이 되었다. 엄마는 손주들을 전부 키워주신 후 노인복지회관을 자유롭게 다니게 되었다. 70세가 지나서야 자신을 위해 컴퓨터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남대문시장에 가도 문구점에 들러 연필과 필통을 사셨고, 빌딩을 지날 때면 손가락으로 간판을 가리키며 “엘, 오, 티, 티, 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셨다. 이런 엄마가 참 귀엽고 아름다웠다. 영어교사 딸인 나는 왜 엄마에게 영어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영어 철자를 익힌 후 컴퓨터 자판을 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블로그를 운영하였다. 만 명 이상의 방문자가 엄마의 블로그를 찾아왔다. 지금도 엄마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블로그 방문자의 댓글에 답신을 보내는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아침 출근길에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자주 건다.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고, 이쁜 내 딸 오늘도 행복하게 잘 보내”라며 기분 좋게 응답해주셨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안고 기운이 없어졌다. 우리 엄마는 씩씩하게 잘 견뎌내실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번엔 회복 시간이 다소 길어지고 있다.

“은빛 할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같이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하고, 좋은 곳에도 여행가야 하고, 딸들이 교장 노릇 잘 하는지 지켜보셔야하거든요. 내일 아침 출근길에 기분 좋은 목소리 들려주실 거죠?”

딸은 이렇게 은빛 할매를 응원하고 있다.

THE 복지타임즈 =고근혜 시민기자  webmaster@bokjib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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