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중반의 데칼코마니 자매. 왼쪽이 언니.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며칠 전  팔순 중반을 넘긴 친정엄마가 큰이모를 만났다. 하얀 머리, 굽은 허리, 굵은 손마디, 그리고 주름진 얼굴…그동안의 삶의 궤적이 달랐지만 연륜이 쌓일 수록 점점 더 닮아가니 천상자매다.두 사람은 스물한 두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서 속된 말로 시집 귀신이 되었다. 엄마는 상주 고씨네 맏며느리고, 이모는 문경 신씨네 맏며느리다. 또한 4남매를 키운 엄마이다. 두 자매는 퇴계 집안 딸로 친정에서 제대로 양반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엄마는 솜씨 좋고, 인품 좋고, 미모도 좋아 집안 어르신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이모도 신씨 집안의 어른으로 고향터를 지키고 계신 것을 보면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엄마가 영리하고 도회지적이라면, 이모는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는 어린 엄마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안 일을 하도록 하셨단다.어린 엄마는 학교를 너무나 가고 싶었다. 밤늦게 순님 이모의 새 가방을 꺼내서 담장 너머에 몰래 숨겨놓았다가, 다음 날 이른 새벽에 그 가방을 동여매고 학교에 먼저 갔다고 한다. 순님 이모가 얼마나 황당해했을까! 순님 이모는 그냥 참고 있고, 외할매에게 엄마가 혼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어린 엄마가 너무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나에게 외갓집은 이모집이었다. 방학마다 점촌 이모집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포도밭에서 다라이 가득 포도를 사와서 푸짐하게 먹고, 이종 오빠들따라 영순 냇가에서 물고기 잡고 고무 다라이를 타고 보트놀이도 했다.물에 빠지면 오빠들이 다시 다라이에 태워주고, 다리 아래를 건너갈 때면 고개를 숙이라고 알려주곤 했다. 상주로 돌아올 때면 용돈도 주머니에 넣어주셨으니 우리 남매에게 외갓집은 늘 가고 싶은 곳이었다.

일전에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점촌 이모집에 다녀왔다. 동생은 이모방에 있는 병원용 침대를 엄마방에도 들여야겠다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하니 이렇게라도 해야 홀로서기에 도움이 된단다. 80대 중반을 바라보는 엄마와 이모는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몸은 아프고 불편하지만, 고운 언어와 정갈한 모습은 여전하고 귀티가 난다. 엄마와 이모의 사진을 보며 마음 한켠이 묵직해지고 슬퍼졌다. 세월이 흐르면 늙어가고 아프겠지. 그런데 아직은 아니고 싶다.

경주 최부자 딸인 두 자매가 양반 종갓집 종부로 살아간 영상을 유투브에서 우연히 보았다. 95세 첫째 딸과 92세 둘째 딸은 교촌 친정집에 나들이를 갔다.물리적 장소인 시댁은 다른 곳이지만, 종부로 살아온 삶의 궤적은 같다. 아직도 종부의 권위가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몸 자태에서 고스란히 뿜어져 나오는 듯 한다.차에서 내려서 두 자매가 친정집을 향해 걸어갈 때 자매의 모습에 울컥했다. 거의 90도 가까이 굽은 허리, 굵은 손마디, 하얀 머리, 주름진 얼굴이 데칼코마니(décalcomanie)였다.

나에게도 언니가 있다. 예전에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했는데, 어느날 남편이 내 사진에서 언니 얼굴이 보인다고 했다. 우리도 서로 비슷하지만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40년 세월이 흐르면, 두 사람 모습이 엄마와 이모처럼, 경주 최부자 딸들처럼 변해갈거다. 허리 구부러지는 각도를 줄이도록 애를 써야겠다. 일어나고 걷기 힘들지 않게…

the복지타임즈=고근혜시민기자  khy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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