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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 통지문'에 발칵...사또는 왜 처제와 형부의 결혼을 허락했나
  • THE 복지타임즈= 변철남 대기자
  • 승인 2020.09.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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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5) ■

삼강오륜(三綱五倫)이고 나발이고 ...


어느 날 매파 막실댁이 들고 온
전 생원의 ‘파혼 통지문’ 한장에
이 진사네 집이 발칵 뒤집히는데…
 
 이 진사네 집이 발칵 뒤집혔다.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에 이 진사의 셋째 아들과 전 생원의 둘째 딸이 혼례를 올리 기로 날짜까지 잡아놨는데 갑자기 전 생원 집에서 파혼 통지문을 보내온 것이다. 그걸 전하러 온 사람은 중매를 섰던 매파 막실댁이다.

먼저 안방으로 들어가 이 진사네 안방마님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숨만 쉬다가 마침내 품속 에서 파혼 통지문을 내놓자 안방마님이 그걸 읽어보다가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의원을 불러와 청심환을 먹이고 몸종이 사지를 주물러 겨우 깨어난 안방마님이 도끼눈에 쌍심지를 켜고 매파 막실댁을 몰아붙였다.

“막실댁, 애당초 그놈의 집하고는 격이 맞지 않아 내가 안한다 했잖아!”

눈을 찌를 듯이 삿대질을 해대자 막실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쥐구멍을 찾았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보잘것없는 집안의 못돼 먹은 딸년을 우리 집안에 시집보내게 됐으면 감지덕지 해야 할 것들이 뭐라고? 파혼하겠다고?”

안방마님이 방방 뛰자 또다시 까무러칠까 봐 막실댁은 안절부절못한다. 잠시 후 안방마님 목소리가 조금 가라 앉았다.

“그래, 오히려 잘됐다. 헌데 우리가 파혼당했다는 이 망신 은 어떡할꼬.”

막실댁이 바짝 다가앉아 말했다.

“마님,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통지문 말미에도 적어 놓았듯이 마님이 파혼을 선언한 것으로 하시면 체면 깎일 일은 없습니다.”

안방마님은 화가 좀 풀리자 파혼 통지문을 들고 사랑방으로 가 이 진사에게 보여줬다. 이 진사는 아무 말 없이 곰방대로 연초만 태우다가 말을 꺼냈다.

“마지막 문구대로 우리 집안 체통이 깎이지 않도록 부인이 조치를 하시오. 애초부터 내키지 않더니….”

이튿날부터 이 진사 집에서 파혼을 하겠다는 말이 새어 나오고 매파인 막실댁도 이 진사네가 전 생원 집으로 파혼 통보를 했다고 나발 불고 다녔지만 전 생원 집 쪽에서는 한마디 말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천석꾼 부자 이 진사네 집 사랑방엔 언제나 문객들로 북적거렸다. 하녀들은 술상·밥상 나르기 에 정신이 없었다. 어느 날 이 고을 양반네들 삼십여명이 동헌에 모여들었다. 면면이 이 진사네 사랑방에 드나들던 문객들이었다.

챙 넓은 갓에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모여 든 그들을 대표해 류 초시가 사또에게 고발장을 전했다. 내용인즉, 전 생원의 둘째 딸이 그 형부와 근친상간해 딸 을 낳았으니 삼강오륜을 능멸한 그년과 형부에게 엄벌을 내리고 그 일족을 방축향리(放逐鄕里)해달라는 것이다.

“여봐라, 형방은 당장 그 연놈들을 묶어 오너라.”

사또가 고함쳤다. 몰려온 양반들에게는 “연놈들을 문초해 응분의 죗값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돌려 보냈다.

삼십리 밖에서 전 생원의 둘째 딸과 형부를 잡아온 시간은 이경이 다된 늦은 밤.

궁금증을 못 이긴 사또가 촛불을 밝히고 그들을 문초하기 시작했다. 살림살이가 쪼들리는 전 생원의 둘째 딸은 팔꿈치를 기운 소맷자락으로 하염 없이 눈물을 훔치다 말문을 텄다.

한평생 과거에 매달리다 살림을 거덜 내고 파락호가 된 전 생원은 슬하에 딸 둘을 뒀다. 얌전한 선비에게 시집간 맏딸이 친정에 와서 아들 하나를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둘째 딸이 언니의 장례를 치를 사이도 없이 핏덩어리 조카를 포대기에 싸안고 이 마을 저 마을 갓난아기 가진 집을 찾아다니며 젖동냥을 했다. 그때 둘째 딸은 이 진사의 셋째 아들과 혼약을 한 사이로 춘삼월 초사흘에 혼례식 날짜까지 잡아 놓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매파를 불러 파혼 통지문을 보냈던 것이다.

일년여를 전 생원의 둘째 딸은 조카를 싸안고 어떤 날은 삼십리 밖까지 젖동냥하러 다녔다. 젖을 뗄 때쯤 조카는 제 이모를 보고 “어마, 음마”하더니 결국은 “엄마, 엄마”로 불렀다. 여기까지 말하던 둘째 딸이 울고 형부도 흐느끼자 사또가 입을 열었다.

“삼강오륜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두 사람의 혼인을 허락하노라.”

처제와 결혼한 그 얌전한 선비는 이듬해 과거에 급제하고 금의환향해 맨 먼저 고을 사또에게 큰절을 올렸다.

THE 복지타임즈= 변철남 대기자  cnbyun36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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