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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기적의 메레디스 빅토리아호를 아십니까
  •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이준희 북한연구실장
  • 승인 2020.06.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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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사문제연구원 이준희 북한연구실장

1만 4천 명의 사상 최대 구조작전에 성공하여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메러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 흥남 철수를 6·25전쟁 발생 70주년 즈음에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눈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날 빅토리호가 부두에 닿자 발을 동동 굴리던 수많은 피란민은”와“하고 탄성을 지르면서 부두 위로 쏟아져 나왔다. 억압과 탄압의 세상에서 자유를 찾기위해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이성을 잃은 듯 호각이 깨지고 동아줄이 처지며 잃어버린 아이 찾는 어머니 울부짖음으로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 ‘국제시장’에 그날의 상황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1950년 10월 15일 압록강 수(水)를 마셨던 국군은 머지않아 북진통일을 눈앞에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인해전술로 구름떼처럼 밀려오는 30만 중공군에게 서부전선의 미 8군이 대패하자 유엔군은 북진 중이던 미 10군단에 흥남에 집결하여 해상 철수 작전을 시작한 것이 바로 1·4후퇴다.

 

10군단 에드워드 알몬드사령관과 현봉학 민사고문은 심각한 대화가 이어졌다. 알몬드사령관은 “군사작전에 민간인을 태울 수 없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한국군 지휘관들은 “피난민을 외면 할 바엔 차라리 걸어서 후퇴하겠다.”라고 극력 반발하였고 현봉학 민사고문은 “존경하는 사령관님 만일 저들을 여기에 두면 처형됩니다. 불쌍한 국민 태워 주세요.”라는 끈질긴 요청에 알몬드 사령관은 고뇌(苦惱)에 찬 결단을 내리게 된다. 결국, 배에 잔뜩 싣는 군수물품(장비 및 항공유)을 16시간 동안 내려놓고 정원 60명에 1만4천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3일항해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한다. 철수 작전 마지막 남은 상선(7,600t급 수송선) 빅토리아호가 피난민을 태워야 할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적재 화물의 위험성을 강조, 그냥 출항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레너드 라루 선장은 망설임 없이 최대한 많은 피난민을 태웠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단일 선박으로서는 가장 큰 구조작전을 수행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며 비좁은 배에서 5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다.

한편, 빅토리아호의 휴먼스토리는 유대인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영화<쉰들러리스트>가 생각나게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유대인들은 쉰들러리스트(체코 나치 군수품 제조 공장 노동자 명단)에 포함됨으로써 극적으로 생명을 구한 1,200여명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은 쉰들러를 영원한 은인으로 생각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전범으로 몰린 쉰들러를 구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진정서를 작성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자신의 전 재산을 날리면서 유대인들을 구해 준 쉰들러를 죽어 혼령이 되어서라도 은혜를 갚겠다는 것이다.

올해는 6.25전쟁 발생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굳세어라 금순아’ 노랫말에 담긴 1.4후퇴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은 전쟁 참혹성을 경험한 세대가 사라져 가고 있는 이때 6.25 전쟁이 더 이상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공산 세력 탄압을 피하여 빅토리호에 몸을 싣고자 했던 피난민들의 거친 몸부림은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아울러 위기에 처한 피란민들을 구하기 위한 현봉학 민사고문의 눈물어린 호소와 빅토리아호 선장 레너드 나루 선장의 휴머니즘에 의한 사고는 각박한 오늘날에도 진한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이준희 북한연구실장  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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